라온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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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닫은 결과 – 상담사례20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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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의 여성이 결혼 2주년을 앞두고 진료실을 찾아왔습니다.
성격 차이가 심하여 이혼을 하려 하는데, 친정 부모님이 먼저 전문가와 상담을 받아보도록 권해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지금까지 자신은 남편과 시댁의 요구에 맞추어 살려고 애를 써왔지만,
남편은 자신의 노력을 당연하게만 여기고, 부부 사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의견을 남편에게 전했으나 남편은 시큰둥한 반응만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부인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친구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양가 모두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편인데, 그 가정 문화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친정의 분위기는 비교적 개방적이며 부모 자식의 대화도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러나 시댁은 상당히 보수적이며 시아버지가 지나치게 권위적이라고 했습니다.
식구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 때에도 다들 먹는 것에만 열중하지,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는 있지만, 너무 인색해서 결혼 당시부터 부모의 도움 없이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습니다.
부인은 결혼 직후부터 경제적으로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신입 회사원인 남편의 수입이 넉넉지 못하여 살림살이에 필요한 돈은 쓰지도 못하는데,
시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에는 적잖은 돈을 써야만 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여러 차례 친정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남편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남편은 모른 척하며 고마운 표현을 한 적도 없을뿐더러 가끔 처가에 돈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면 남편은 부인의 돈 씀씀이를 탓하고 또 편한 것만 찾는 사람으로 비난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인은 아마 남편이 아버지에게 맞으며 자란 때문에 지금도 시아버지의 말에 꼼짝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부부끼리 약속한 것도 시아버지의 의견 때문에 번복되고, 그런 것에 부인이 불만스러워 하면 남편은 부인을 달래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이어지자 부인은 남편이 속 좁고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남편과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는데,
부부 싸움이 잦아지면서 차츰 남편의 언행이 과격해지자 부인은 남편이 시아버지를 닮아간다고 생각되어
이런 결혼 생활이라면 일찌감치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부인에게 일단 이혼에 대한 결심을 보류하고, 남편을 상담실에 오게 해서 부부치료를 받아볼 것을 권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상담실에 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또 설령 온다고 해도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다고 했지만, 일단 필자의 권유를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상담 받기를 끝내 거부하였고, 부인은 이혼할 결심을 굳히고 다음 상담 시간을 취소하였습니다.
상담을 받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을 상담가에게 맡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사실은 상담을 받으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아주 적극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이 갈라지면 아무리 사소한 문제도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례의 남편이 실지로 어떤 사정이 있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필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부인에게만 노력을 하도록 권할 수는 없어서, 안타깝게 그대로 종결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