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무거운 겨울 옷을 벗지도 않았는데, 양지 바른 화단마다 목련이 피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꽃 싸개 속에 숨어있었을 하얀 꽃잎이 눈부시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몇몇 꽃 봉오리는 그 끝의 싸개가 벗겨지지 않아 꽃잎을 채 펴지 못하고 있다.
그 중 얼마는 다른 꽃송이 보다 조금 늦게 피겠지만, 만약 그 꽃 싸개를 끝내 떨쳐내지 못한 꽃들은 어떻게 될까?
추운 겨울 동안 여린 꽃잎을 잘 지켜준 꽃 싸개지만, 봄이 되면 꽃에서 벗겨져 떨어져야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부모는 그 자녀에게는 꽃 싸개 같은 존재다.
겨우내 그 안에 예쁜 꽃을 품고 있다가 그 꽃이 피어날 때쯤에는 땅에 떨어져
사람들의 짧은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꽃 싸개다.
자녀보다 자신이 더 잘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겠지만,
그 자녀를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본능을 적절하게 버리지 않으면,
그 자녀는 미처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간 꽃처럼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자녀를 위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뜻하지 않게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예전의 부모들은 충분히 배우지 못해서 가난했고 그만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그런 고생을 자녀에게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서, 자녀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자녀가 자신보다 성공하게 되면 자신의 사명을 다 한 것으로 여겼다.
(물론 그런 부모들 중 일부는 자신의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한 모습으로 자녀에게 짐이 되기도 한다.)
요즘의 부모들은 이전 세대의 부모들과 다르다.
지금의 부모들은 배울 만큼 배우고 세상 정보에도 밝아서,
그 대부분이 자녀의 공부 지도와 진학 상담도 직접 나서서 해내곤 한다.
이런 부모들은 마치 “너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다.
너에게 최선의 목표와 진로는 내가 알고 있으니,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담실을 찾는 사례들 중에는,
성공한 개업 의사의 자녀가 그 부모의 병원을 물려받기 위해서 의대에 진학했지만,
끝내 적응을 하지 못해서 자퇴를 하고만 경우;
아버지가 애써서 이룬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을 포기하였으나,
원래 부족했던 사업적 수완 때문에 아버지와의 갈등이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경우;
경쟁적인 한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라고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으나,
그곳에서는 물론 귀국 후에도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지 못해서 우울증에 빠진 경우;
자녀의 행복을 위한 부모의 조언과 개입이 지나쳐서 자녀의 결혼 생활에 도리어 지장을 준 경우들이 드물지 않다.
이런 사례들 모두 부모들의 노력이 지나쳐서 도리어 자녀의 성장을 가로막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하겠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위한 최선에만 골몰한 나머지, 자녀에게 자신들이 어떤 존재일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곤 한다.
부모에게 그 자녀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만큼, 그 자녀에게는 부모가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는 버거운 대상이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마음과 수고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삶의 연장으로 보지 말아야 하며,
부모 자신의 삶을 자녀를 위한 거름 정도로 여기서도 안 된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자녀 사이라도 각자의 책임과 권리를 가진,
개별적이고 동등한 존재라는 점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느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예의와 한계를 지키며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