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식씨(가명)는 중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최근 고등학생인 아들이 수업태도가 불량할뿐더러 부모를 속이고 학원 대신 PC방에 놀러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들의 상담을 의뢰하였다.
아들은 뜻밖에 착해 보였는데, 학교 다니기가 싫고 집도 싫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감시를 받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니던 중학교 교감선생님이 아버지와 친구라서 성적은 물론 학교에서 있었던 거의 모든 일들을 아버지가 알고 꾸중을 하였던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는 것을 걱정했지만, 아버지가 좀 지나친 면이 있다고 했다. 사실 어머니 자신도 결혼 후 지금까지 남편에게서 매사에 많은 지적을 받고 사는데, ‘정말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 선생님과 같이 사는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칼 융은 각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서 형성된 ‘기능적 인격’을 ‘페르조나’ 라고 이름 붙였다. 원래 페르조나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왕이나 신하처럼 연극에서 맡은 역할을 할 때 쓰던 가면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직업 활동이나 대인관계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페르조나를 적절하게 발달시키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페르조나가 불충분하게 발달된 사람은 자기 역할에 필요한 책임감이나 성실함이 부족하여 주변의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군인이나 소방관이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 몸만 사린다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이익을 챙기느라 사회에 피해를 끼치는 공직자들도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자녀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여 어린 자녀들을 불행하게 만든 부모들에 관한 뉴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런 예들을 보면 페르조나의 발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페르조나가 지나치게 강해도 문제가 된다. 즉, 자신의 사회적 또는 직업적 기능을 자신의 진정한 인격과 동일시하는 경우다. 이런 예는 성직자나 교사 또는 법관이나 의사처럼, 타인의 존경을 받는 직업인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든 그룹 회장이든, 자신의 가족에게는 그저 한 사람의 남편 또는 아버지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집에서도 여전히 사회적인 가면, 즉 페르조나를 쓰고 있으면 가족들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교류를 이룰 수가 없게 되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사례의 김찬식씨도 이런 ‘페르조나 동일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부인과 자녀에게까지 남편 또는 아버지가 아닌 ‘선생님’의 역할을 계속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던 것이다.
필자의 설명을 들은 김찬식씨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지른 잘못을 제 자식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랬는데, 그게 지나쳤던가 보군요. 사실 저도 집에 오면 넥타이부터 풀지만 그래도 계속 목이 답답하던데, 그 이유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아들보다 제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인 거죠? 이제 집에서는 선생님이 아닌 그냥 남편이거나 아버지, 그리고 그냥 저 자신으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쇄적인 효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김찬식씨의 각성과 노력의 결과로 그 아들은 물론 가족 모두 원래 바랐던 생활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