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칼럼

  • 2014-10-21
  • 결혼을 앞 둔 예비 부부가 진료실을 방문하였다. 결혼할 날이 다가올수록 예비신부는 자신이 결혼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약혼자에게 결혼식을 미루거나 취소하자고 조르고 있었다. 그러나 예비신랑은 자신들이 이미 충분히 교제를 해왔으며 약혼녀가 이미 임신 상태여서 결혼을 취소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객관적인 판단을 얻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예비신부는 자신의 아버지는 사업가로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부터 하였다. 그래서 아마 약혼자의 부모님들께서 자신에 대해 지나친 경계를 하면서도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시는 것 같아 몹시 불편하다고 하였다. 자신이 부모님 덕에 남들보다 편하게 살아온 것은 사실이겠지만, 대학을 마치고 직업을 가진 이후로 부모님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받은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생각도 없다고 하였다. 특히 자신의 아버님은 대단히 가부장적인 분이어서 유산을 물려준다 하여도 아들에게나 줄 것이며, 남는 것이 있으면 자선단체에 기부를 할 것이니 딸들은 전혀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부모님의 관심을 얻기 위해 어려서부터 최선을 다 했지만, 오빠가 워낙 매사에 뛰어난지라 자신은 한번도 부모님의 관심과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면서 울먹였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힘들어 하는 것을 말하려 하여도 약혼자가 바쁘다는 이유로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으니, 그런 사람을 믿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회의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예비신랑은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지금은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정보가 쏟아지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 시가 아깝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결혼을 하여야 하겠기에 없는 시간을 쪼개어 상담을 받으러 왔다. 이미 신혼 살림을 시작할 집도 준비하여 두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모님은 남의 돈을 욕심 낼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염려하지 말라고 약혼녀에게 말을 해두었는데도 자신을 믿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하였다.

    면담과 검사를 통해서 알아본 결과 예비 신부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면의 자신감이 몹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래서 자신이 남편과 시부모에게 실망을 끼치게 되지 않을까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비신랑은 지금껏 노력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감정적 태도에 약점이 있었다. 자신의 감정적 어려움을 억압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정서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서툴렀다. 그래서 약혼녀를 안심시키려고 애는 썼지만, 그럴수록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비신랑에게 부족한 감정 세계를 보충할 수 있도록 약혼녀의 말을 잘 들으면서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을 표현하도록 했다. 예비신부에게는 부모님의 칭찬을 받지 못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약혼자가 표현에는 서툴지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치료를 마치면서 예비신랑은 아직 많이 멀겠지만 자신이 부족한 점을 알았으니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예비신부는 우울과 불안이 현저히 줄어들어 다시 결혼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