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칼럼

  • 2014-10-23
  •    A부인은 남편과 대학 선후배 사이로 함께 공부하여 둘 다 공무원이 되었다.

    남편은 승진에 필요하다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거의 매일 밤 늦게 귀가하였다.

    남편의 수입은 접대와 개인 지출로 거의 소진되어, 생활비는 거의 부인의 수입만으로 꾸려야 했다.

    남편은 가족여행에도 빠지거나 함께 갔더라도 잠만 잤다. 심지어 남편의 보고서를 부인이 대신 준비하기도 했다.

    남편이 상당히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동안 부인은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바빠 승진시험을 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A부인은 남편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포기한 지는 이미 오래 되었으나, 자녀들 때문에 또 공무원인 자신의 경력에 흠이 될까 봐 지금까지 이혼을 피해오고 있었다.

     

    어쩌다 휴일에 집에 있던 남편이 아들의 시험 준비를 시켜준다고 했다가, 어찌어찌 하여 아들을 심하게 구타하게 되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집을 나가지 않으면 자기가 집을 나가겠다고 했고, 남편은 부인이 집안 관리를 엉망으로 해서 아들이 아버지를 존경할 줄 모르는 것이라며 오히려 부인을 탓하였다.

    A부인은 이런 남편과 더 사는 것은 자신과 아이들에게 해로울 뿐 이겠다고 생각하여 이혼을 하기로 작정하게 되었다.

    상담자가 부부상담이나 가족치료를 권하였지만, A부인은 남편이 남의 말을 들으러 올 사람도 아닐뿐더러 자신도 이혼하게 될 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속마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상담 도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A부인은 남편에게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힌 적이 없었다.

    남편이 어떻게 나올까 무섭기도 했지만, 자신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남편은 다 알면서도 자신의 기대를 묵살하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

    상담자는 A부인에게 자신의 인지적 오류를 개선하고 자기 주장을 강화하는 치료를 권유하였다.

    또 남편과의 이혼 여부는 그런 후에 진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합의하였다.

     

    A부인은 몇 차례의 개인 상담을 받은 후에 남편에게 따지거나 애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로 남편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남편이 결정할 일이지만, 자신과 아이들은 더 이상 남편이 하는 대로 끌려 다니지는 않을 것이라고 남편에게 분명하게 말하였다.

    둘째로 자신은 이혼하기로 이미 결심했지만, 남편이 앞으로 하는 것을 보아서 법적 절차를 유보할 수도 있음을 통고했다. 만약 남편이 이혼할 생각이 아니라면, 가족의 일원으로서 할 일을 해야 하고 더러는 싫더라도 부인과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였다.

     

    남편은 예전과 다른 부인의 태도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일단 자신도 생각을 해보아야 하니 한 달의 말미를 달라고 했다.

    변화는 며칠 후 바로 나타났다.

    남편은 전과 달리 귀가가 늦을 때면 전화를 하였고, 개인 약속이 잡히면 부인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부인이 사정이 생겨 귀가가 늦어진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자기들끼리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아이들의 경계심이 약해지자, 가끔은 아이들의 방에 들어가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남편의 변화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A부인은 남편이 이처럼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솔직히 남편의 변화가 과연 계속될 수 있을지도 믿기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남편이 이혼만은 피해보려고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괜찮겠다고 생각되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었다.

    상담자는 부부가 함께 불신을 극복하고 공동의 목표를 약속할 수 있도록 부부 공동상담을 권했으나, 부인은 망설였다.

    부인 자신이 그 동안 잃어왔던 자신감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공동상담을 하면 자신의 약한 면을 남편에게 보이게 될 것이 두렵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부인의 오해지만, 상담자는 일단 부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남편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A부인이 자신의 결심이 확고함을 남편에게 성공적으로 알릴 수 있었던 때문이었다.

    A부인이 그 힘을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